<매번 새로운 환경 속 에너지를 유지하는 방법>
OHYE
승무원분들은 매번 다른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양한 곳에서 먹고 자고 하다 보니, 가끔은 내 집도 호텔같이 느껴질 것 같은데요. 계속 환경이 바뀌는 삶은 어떤가요?
주희
저는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계속 환경이 바뀌는 삶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승무원을 한다고 생각해요. 도전한다고 생각하고, 이거에서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오래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미국 가면 이런 것을 좋아하지, 동남아에 가면 이런 것이 좋아’하면서 장점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요.
OHYE
그런 삶을 유지하는 본인의 비결이 있나요?
주희
어떻게 보면 내 집 전체를 짊어지고 다니기 때문에 예민해지는 경우들이 있어요. 준비물을 빠뜨렸다든지, 내가 좋은 컨디션이 아닌데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든지 다양한 경우들이 있는데, 저는 이걸 유지하는 비결은 첫 번째는 월급과 여행의 메리트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는 나를 잘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초창기에 많이 들여다봐야 해요.
OHYE
오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어떤 식으로요?
주희
저는 추위를 많이 타서 전기담요가 반드시 캐리어 한 쪽에 항상 있어야 하고, 한국의 온돌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데 외국에 가면 히터 때문에 고생해요. 그래서 나의 성향과 컨디션에 대해 세세하게 알수록 필수품들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어디에 있든 그 장소도 내 집처럼 변하게 되는 거죠. 물론 100% 같을 수는 없어요. 가장 소중한 우리 강아지도 없고요. 하지만 최대한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오래갈 수 있는 비결 같아요.
OHYE
그러면 가끔은 업무 환경이 안정적이기를 바랄 때도 있나요? 본인만의 안온한 느낌은 어디서 얻는지 궁금해요.
주희
저는 업무 환경이 안정적이기를 간절히 바랐을 때는 강아지가 아팠을 때예요. 집에 무슨 일이 있을 때는 9 to 6 직장환경이 부러웠어요. 저는 한 번 출국하면 며칠은 있어야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는 이제 하늘에서 내려와야 하나 하다가도 별일 없어지면 마음을 잘 다스리고 비행기 안에서 활발히 일을 하게 돼요. 그런데 이쯤 일해보니 9 to 6 지상에서의 직장생활은 어떨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회사 안에서도 내려가서 일할 수 있는 길도 있기 때문에 고민도 되고요. 저만의 안온한 느낌은 ‘홈 스위트 홈’이에요! 해외 가서 퇴근하고 호텔을 가더라도 결국엔 정말 퇴근했다고 생각 들 때는 집에 돌아와서 우리 강아지 보는 그 순간이더라고요.
“나를 잘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초창기에 많이 들여다봐야 해요.”
OHYE
저는 주희 님과 오랜 친구로 지내오면서 한 번도 지쳐 보이거나, 힘든 이야기를 하며 불평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밖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분명 힘든 순간들이 있었을 거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도 한결같이 밝은 에너지를 유지해줘서 옆에서 보는 사람마저 고맙고 존경스러웠거든요. 밝은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얻고 어떻게 유지하는 건가요?
주희
이 질문이 참 어렵더라고요. (웃음) 저는 에너지는 다양한 곳에서 얻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빠져도 다시 조금 채우고, 조금 빠지면 또 다른 곳에서 조금 채우고 하는 식이에요. 저는 집순이라 가장 에너지를 많이 얻는 곳은 당연히 집인데 이제는 해외에서도 그런 게 생겼어요. ‘어디에 가면 어떤 것을 하는 게 가장 좋아’라는 식인데, 저의 행복 리스트가 생긴 거죠. 그 리스트를 실행하면 저의 에너지가 채워져요.
OHYE
너무 좋네요. 그러면 각 도시마다 그 행복한 추억들이 있는 거잖아요. 어떤 행복 리스트가 있어요?
주희
하와이에서는 책이나 다이어리를 들고 해변에 앉아있어요. 런던에 가면 차를 꼭 마셔요. 미국에 가면 주로 놀이공원이나 해변가 근처에서 관광을 해요. 동남아에서는 마사지를 꼭 받아요.
OHYE
오 그래도 대부분은 쉬는 행동들이네요.
주희
저는 삼분의 일은 한국에서 살고, 삼분의 일은 하늘에서 살고, 삼분의 일은 해외에서 사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친구들을 최대한 보려고 하고 해외에서는 오히려 쉬는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오히려 해외에서 관광할 것들은 어렸을 때 다 해봐서 이제는 해외에서 쉬고 한국 돌아오면 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
“가장 에너지를 많이 얻는 곳은 당연히 집인데 이제는 해외에서도 그런 게 생겼어요.
‘어디에 가면 어떤 것을 하는 게 가장 좋아’라는 식인데, 저의 행복 리스트가 생긴 거죠.
그 리스트를 실행하면 저의 에너지가 채워져요.”
<여행하는 삶을 살며 느낀 것들>
OHYE
굉장히 많은 곳을 다니셨잖아요. 어느 나라나 도시를 가장 좋아하나요?
주희
저에게 가장 힐링을 주는 도시는 하와이에요. 호놀룰루요! 왜냐하면 처음 하와이 갔을 때 인상이 강렬했어요. 하와이만큼은 모든 사람이 다 그냥 즐기러 오는 도시 같았거든요. 다른 도시들은 사실 일에 막 힘들어하고 있는 직장인들도 있고, 사람들의 표정이 천차만별인데 하와이는 마치 축복받은 도시에 온 것처럼 모두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저녁이 되면 길거리에서는 버스킹을 하고 노을도 예쁘게 지는데, 바람도 심지어 따뜻하게 부니까 거기에 가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져요.
OHYE
아 너무 가보고 싶어지네요.
주희
거기는 맨발로 다녀도, 꽃을 달고 다녀도 아무도 안 쳐다보는 곳이에요. 오히려 당연한 거죠. 인사도 다르잖아요. ‘알로하!’ 이렇게 인사하잖아요. ‘고마워’도 ‘마할로’라고 하는데, 언어가 다른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이 도시에 즐기러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언어 같아요.
OHYE
그러면 전과는 다르게 최근에 좋아진 곳이 있다면요?
주희
최근에 좋아진 도시는 런던이에요. 어릴 때는 날씨 때문에 제가 기대했던 해리포터의 나라가 실망스럽게 다가왔는데 요즘에 런던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최근에 큰 호수가 있는 공원에 가봤는데 거기서는 강아지들이 목줄을 안 하고 자유롭게 있고 백조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가까이 있었어요. 저는 런던이 조금은 귀족적이고 딱딱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도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런던에 대한 편견이 깨졌던 것 같아요. 큰 충격과 변화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내가 생각했던 것을 부숴 나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OHYE
정말 재미있는 변화네요.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많은 곳을 여러 번 가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최대한 그 나라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다 즐기려고 하지 이렇게 일상적이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여행은 많지 않아서 주희 님의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네요.
OHYE
수백 번의 비행을 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주희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는 치매가 있으신 할아버지분이 타셨을 때예요. 일행 없이 오랜 시간 동안 계속 무언가를 쓰고 계시길래 혹시 봐도 되는지, 뭘 쓰시는지 여쭤봤어요. 그런데 먼저 돌아가신 할머님께 쓰시는 러브레터였어요. 똑같은 문단을 계속 반복해서 쓰고 계시더라고요. 기억을 조금 잃으셨어도 사랑은 잊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했죠.
OHYE
세상에...너무 강렬해요.
주희
정말 비행기는 작은 세상이에요. 별일이 다 있어요. 사실 그래서 많이 배워요.
"‘알로하!’ 이렇게 인사하잖아요. ‘고마워’도 ‘마할로’라고 하는데,
언어가 다른 느낌이 아니라 그냥 이 도시에 즐기러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언어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