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이터에서 AP로 직무를 바꾼 계기>
OHYE
광고를 업으로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윤주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광고홍보학과에 진학했어요.
OHYE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어떻게 알게 되신 거에요?
윤주
맞아요. 근데 그때 당시에 광고 관련된 드라마가 나왔어요. 드라마를 계기로 광고업이 주목받았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저 일 되게 재밌어 보인다’고 생각해서 간 거지 대단한 시작은 아니었어요.
OHYE
학창 시절부터 카피라이터를 꿈꿨다면 카피라이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셨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9년 차 때 AP로 직무를 바꾼 이유가 궁금해요.
윤주
9년 차에 ‘아 진짜 하기 싫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번아웃이었던 것 같아요. 핑계 일 수도 있지만, 카피 라이터가 크리에이티브하게 움직일 수 있는 폭이 점점 줄어든다는 생각이 든 시점이기도 하고요. 제작물에 관해 가이드 주려는 사람들은 너무 많고, 그렇게 되니 방송되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있고요. 이게 절 지치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9년 채우고 10년 때 퇴사했어요. 그러다 당시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카피라이터 출신 AP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선배 통해 전해 들었고, 그 계기로 AP로 입사하게 되었네요.
OHYE
10년 전이면 AP라도 여전히 야근이 많을 때 아니었나요?
윤주
실제로 왔더니 여기도 야근하지만, 예전에 워낙 심하게 일했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 때는 있어도 업무 강도 때문에 힘든 거는 솔직히 지금까지도 잘 없어요.
OHYE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어요. 카피라이터로 근무했을 당시에 하나의 제작물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투여해 생각했다는 게 깊이 있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 시절이 도움이 되진 않으셨나요?
윤주
근데 업무하시면 아시겠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느라 그런 게 아니잖아요. 3~4가지를 집중하니까요. (일동 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일하는 방식밖에 몰랐던 것 같아요. 더 빠르게 집중하고, 효율적으로 회의하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런 걸 요구받은 적도 없고 오로지 물리적인 시간만 엄청나게 투여했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인풋이 전혀 없는 생활은 광고 회사 일에 전혀 도움이 안 돼요.
OHYE
공감해요. 일이 안 풀려서 산책하러 나왔을 때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우연히 산책하다가 오혜 콜렉티브가 만들어진 것처럼요.
"기본적으로 인풋이 없는 생활은 광고 생활에 전혀 도움이 안 돼요."
<윤주 님에게 듣는 타인을 설득하는 방법>
OHYE
다시 AP 관련해 좀 더 얘기해 보자면, AP는 광고회사에서 구심점이 되는 조직이잖아요. 컨셉을 설득하기 위해선 그야말로 설득의 전문가가 되어야 할 텐데, 설득의 방법이 있나요?
윤주
AP는 모든 프로젝트의 초반에 달리는 사람이거든요. 초반에 전략이 먼저 나와야 하니까. 프로젝트를 다른 팀보다 먼저 시작하니까 당연히 조금씩 앞에 있다는 이유로 계속 설득할 수밖에 없는 역할인 것 같아요. “내가 전략가니까 설득을 해야 해”라는 게 아니라 먼저 달리는 사람으로서 계속 설득해야 하는 구조랄까요.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똑똑하게 말하는 것보다 간절하게 말하는 게 더 설득 적이라는 건데요.
그렇잖아요. 뭔가 똑똑해 보이는 사람보다 ‘저 사람 뭔지는 모르겠는데…. 저거를 진짜 하고 싶어 하는 건 알겠어.’ 하는 누군가한테 사람들은 더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 같아요. “이거 저 진짜 꼭 하고 싶어요.”고 말하는 사람이요. 물론, 진심인 경우에! 사람들은 타인의 꿈에 동승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화려한 언변으로 설득하는 사람보다 ‘저 사람, 저거 진짜 하고 싶구나’ 하는 사람한테 더 에너지를 나눠주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타인의 꿈에 동승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윤주 님의 기억에 남는 직장 동료>
OHYE
마지막으로 질문을 할게요. 기억에 남는 동료나 직장에서 에피소드 있으세요? 지난여름에 윤주 님이 인스타그램 피드에 직장 동료가 관둔다고 했는데 붙잡았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윤주
제가 AP로 일하면서 AE가 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느꼈어요. 어떤 AE와 일하냐에 따라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더라고요. 지금은 퇴사하신 그 팀장님과 자주 일을 했었는데요.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프로젝트 원들이 설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저에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그 외에 행정적인 절차는 다 지원해주겠다며 저를 지지해 주셨어요. 전폭적으로 누구를 믿어준다는 걸 선배도 아닌, 똑같은 직급의 파트너가 해줬다는 것에 감동했어요. 정말 흔치 않은 경험이거든요. 그분은 후배들에게도 그런 분이세요. 그래서 퇴사할 때 너무 아쉬웠죠.
*AE: Account Executive의 약자로 광고주, 제작 및 매체 담당자와 모두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합니다.
"전폭적인 신뢰를 행동으로 보여준 동료가 저에게 감동을 줘요"
OHYE
오늘 인터뷰 재미있으셨나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윤주
인터뷰 요청을 받을 때부터 너무나 정성스럽고 근사한 요청서가 와서 많이 놀랐거든요. 이 장소 선정과 두 분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실 때의 표정과 준비해주신 선물까지 제가 뭔가 소중한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오전 근무와 오후 근무 사이에 이런 리프레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커피를 놓고 모니터를 켤 에너지가 생겼어요.